고양의 역사

고양시의 충실한 문화지킴이 고양문화원

중대역사

작성자 : 고양문화원 날짜 : 12/04/30 13:41 조회 : 6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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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삼국시대~통일신라시대
고양지역이 선사시대에 이어 역사무대에 기록되기 시작한 것은 백제가 한강유역을 중심으,로 고대국가로의 건국·성장하는 과정이었다. 백제는 당시 하북위례성을 삼각산 아래 만들고 한강 유역을 경량하였으나 서기 475년에 고구려의 장수왕이 백제의 수도성을 함락시킨 이후에는 고양지역도 고구려의 영토로 귀속되었다. 고구려는 지금 고양지역내에 달을성현과 개백현을 시치하였다.
그리고 달을성현은 후에 고봉현으로, 개벽현우왕, 왕봉현·행주등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이 두 현은 고구려의 북한산군과 함께 백제, 신라를 경략하는 거점의 하나가 되었다. 그 뒤 신라 진흥왕이 백제와 연합하여 고구려의 세력을 한강유역에서 몰아낸 후 진흥와 16년(555)에 북한산에 행차하여 순수비를 세웠으며 고양지역에 북한산주를 설치하여 군사적인 요지를 삼았다.
신라는 삼국을 통일한 후 전국을 9주 5소경으로 재편성 하였는데 당시 고양지역은 646년에 설치된 한산주에 소속되었다. 그리고 달을성현을 고봉으로 개벽현을 우와(일명 왕 봉)으로 개칭하였다.

5. 고려시대
고려조는 통일한 후 태조23년(940)에 우왕현을 행주로 바꾸고 별호로 덕양이란 명칭을 사용하였다. 그리고 중앙집건적인 지방통치체제가 획립된 현종 9년(1018)에 고봉현과 행주현 두현을 양광도의 양주에 속현으로 예속시켰다. 고양왕 2년(1390)에 경기도를 좌도와 우도로 나누면서, 문종때의 제도에 따라 본래 양광도에 속해 있던 고봉현을 경기좌도에 소속시켰다.

6. 조선시대
조선왕조가 건국된 후 태조3년(1394)에 비로소 고봉감무를 설치하고 부원현과 황조향을 고봉현에 에속시켰다. 이로써 고봉현은 종래 속현의 위치에서 벗어나 지방관이 파견되는 주현의 지위로 승격되었다.
이중에서 부원현은 지금의 용산, 과천지역 있으며 황조향은 옛 일산읍 주엽리 일대가 되는 곳이다. 이리하여 비로소 오늘날의 고양지역과 대략 비슷한 지역으로 이루어졌고 태종13(1413)에 전국을 8도로 재편성한 후 덕양에 사는 백성의 요청에 따라 현의 명칭을 고봉과 덕양 두현의 이름을 한 글자씩 따서 고양현이라 바꾸고 종6품관인 현감을 두었다.
성종 원년(1470)에 덕종의 능인 경릉과 예종의 능인 창릉(두곳다 서오릉에 있음)이 있는 지역이라 하여 관례에 따라 현에서 군으로 승격시켰다. 그러나 연산군 10년(1504)에는 지언, 이오을, 미장수 등이 국왕을 모독했다는 죄로 처벌당하는 사건이 일어나면서 그 죄인이 살던 곳이라 하여 고양군이 광주군과 함께 혁파되었다. 이때 관아가 있던 곳은 놀이터로 만들고 모든 백석은 내쫓고 민가까지 헐어 내수사의 노비들만 살게 되었다.
그 뒤 종종 원년(1506)에 군으로 복구되었다. 인조3년(1625)에 고양군수 심창이 관사를 벽제관이 잇는 곳으로 옮겼으며 이후 고양군 지역은 큰 변화없이 조선말기에까지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