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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재] 이유청 묘

작성자 : 고양문화원 날짜 : 23/06/25 21:56 조회 : 4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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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시 향토문화재 제54호

지정일 : 2009. 8. 31

 

 소재지 :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도내동 844-3임

 

 

★ 12世 諱 惟淸(韓原君)公 1459~1531

목은선생의 5대손이며 참찬(參贊) 諱 훈(塤) 안소공(安昭公)의 아들인 諱 惟淸(韓原君)公은 1486年 (성종 17) 문과에 병과(丙科로 급제, 지평(持平), 장령(掌令등을 역임하고 1498年  연산군 무오사화(戊午士禍)때에 집의(執義)로서 김종직(金宗直)의 부관참시(剖棺斬屍)를 반대했다가 삭주(朔州)에 流配된 후, 3년 만에 풀려나왔다. 그러나 곧 이은 갑자사화(甲子士禍)로 삭직(削職)되었으며 중종반정(中宗反正) (1504)으로 재 등용되어 집의동부승지(執義同副承旨)등을 지내었다. 중종 2년(1507) 정난공신(定難功臣) 2등에 녹훈(錄勳)되고 그 후 우부승지(右副承旨), 한성부좌윤(漢城府左尹), 대사헌(大司憲), 호조참판(戶曹參判)등을 역임하였다. 그러나 중종 3년(1508) 功臣에 오르지 못한 신복의(辛服義)의 역모사건에 연루 강진(康津)에 유배되었다가 1511년 좌참찬(左參贊) 우의정(右議政)에 올랐다. 기묘사화(己卯士禍)의 중심인물이 되어 정암 조광조(靜庵 趙光祖)등을 肅淸하여 한원군(韓原君)에 봉해졌다. 그 후 등극사(登極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와 중종 18년(1523)에 左議政이 되어 영경연사(領經筵事)를 겸하였으며 중종 23년(1528)에는 영중추부사(領中樞府事)가 되어 궤장(机杖)을 하사받았다. 시호는 공희(恭僖)이다.

 

묘는 도내동 은못이 마을의 한산이씨묘역에 위치하며 貞敬夫人 慶州 李氏의 묘와 합부되어 있다. 묘소에는 상석, 고석, 향로석, 장명등, 문인석 2쌍이 있다. 문인석은 봉분 앞쪽에 작은 것을 배치했다. 장명등의 크기는 총 높이 204cm, 지붕 너비 88cm이다.
봉분 앞에는 2기의 묘표가 세워져 있는데 하나는 근래에 다시 세운 것이며 옛 묘표에는 ‘大匡輔國 崇祿大夫 議政府左議政 兼領經筵監 春秋館事 世子傅 韓原君 李公之墓’라 기록되어 있다. 비의 크기는 180×45×19cm이며, 받침은 40×90×53cm이다. 상석은 6.25때 한쪽이 깨어져 새것으로 교체하였다. 깨어진 상석은 묘의 좌측에 위치하고 있다. 크기는 20×160×97cm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