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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재] 성사동 권희선생묘

작성자 : 고양문화원 날짜 : 23/06/25 21:58 조회 : 4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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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시 향토문화재 제38호

지정일 : 1999. 2. 1

 

 소재지 :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성사동 산60-6(임)

 

 

권희(1319~1405)는 고려말 조선조 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안동으로 檢校侍中 權皐의 아들이며 조선조 전기의 대학자이며 정치가인 陽村 權近의 아버지가 된다.

주청부사로서 다시 명나라에 다녀와 황해도 · 충청도의 관찰사를 역임하였으며, 강화유수 · 금산군수 등을 두루 거친 뒤 광주목사에 임명되었다. 임진왜란 때에는 왕실의 신주를 안전히 모신 공으로 자헌대부에 올랐다

 

본관 안동. 자 사열(思悅). 호 남악(南岳). 중추부동지사 상(常)의 아들. 1568년(선조 1) 진사가 되고, 1584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승문원(承文院)에 등용되었다가 주서(注書) ·전적(典籍)을 거쳐, 각 조(曹)의 낭관(郞官)을 지내고 양사(兩司)의 벼슬을 역임하였다. 1592년 종묘서령(宗廟署令)이 되고, 그 해 임진왜란이 일어나 선조가 평안도로 피난할 때 역대 왕의 신주(神主)와 어보(御寶)를 안전히 모시고 행재소(行在所)에 도착하였다.

1596년 종부시정겸집의(宗簿寺正兼執義)로 진위사(陳慰使)의 서장관(書狀官)에 임명되어 명나라에 갔다가 돌아와, 호조 ·예조 ·형조의 참판(參判)을 지냈다. 1603년 주청부사(奏請副使)로서 다시 명나라에 다녀와 황해도 ·충청도관찰사를 역임하였으며, 강화유수(江華留守) ·금산군수(錦山郡守) 등을 두루 거친 뒤 광주목사(廣州牧使)에 임명되었다.

임진왜란 때에는 왕실의 신주를 안전히 모신 공으로, 1624년(인조 2) 자헌대부(資憲大夫)에 올랐다. 호성(扈聖) ·선무(宣武)의 원종공신(原從功臣)으로, 후에 우의정에 추증되었다.

 

봉분 앞에 세워진 묘비는 윗부분을 다듬어 마름모꼴로 만들어 세웠고 앞면에는 ‘朝鮮政丞靖簡公 權僖之墓 辰韓國大夫人 韓氏부葬’이라 표기되어있다. 또한 장명등은 화창이 두개로 옥개석의 조각수법이 뛰어난 작품이며 구조는 사각의 火舍石위에 사각형 옥개석을 얹은 형태이다. 문인석은 조선 전기의 일반적인 형식인데 전체적으로 몸에 비해 머리가 크며 땅속에 묻힌 부분과 아래쪽이 왜소해지는 점이 특징이다.

 

묘는 원당 전철역 남쪽의 성사동 불당골 마을 안에 辰韓國大夫人韓氏와 합장되어 위치하고 있다. 묘소에는 묘비, 장명등, 상석, 고석, 향로석, 문인석 2쌍이 있으며 최근에 오석의 비석과 망주석 1쌍, 문인석 2쌍을 그 앞쪽에 갖추어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