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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재] 류진동선생묘 및 신도비

작성자 : 고양문화원 날짜 : 23/06/25 23:00 조회 : 3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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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시 향토문화재 제28호

지정일 :1991. 6. 25

 

소재지 :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행신동 산106-8(임)

 

류진동은 조선조 중기의 문신으로 연산군 3년(1497)에 출생하여 명종 16년(1561)에 돌아갔다. 자는 숙춘(叔春), 호는 죽당(竹堂) 본관은 진주(晋州)로 한평(漢平)의 아들이다. 중종 17년(1522) 사마시를 거쳐 1531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중종 33년(1538) 정언(正言)을 지냈으며 이어 지평(持平), 교리(校理), 장령(掌令)을 두루 역임한 후 중종 38(1543) 부제학(副提學)에 올랐다. 전라, 경기, 평안도의 외직을 맡고 명종 5년 성절사(聖節使)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그러나 4년 뒤 대사헌의 탄핵을 받아 파직되었으나 이때 경연(經筵)에서 주역을 진강(進講)하게 되었는데 그가 적임자라 하여 경연관(經筵官)으로 다시 기용되었다. 이어 공조판서에 이르렀고 명종 14년(1559) 도총관(都摠管)을 겸임하고 이어 중추부사가 되었으나 중풍으로 곧 돌아갔다. 문사에 뛰어났으며 글씨와 그림에도 뛰어났다. 일설에는 남대문의 현판 ‘숭례문(崇禮門)’을 썼다는 이야기도 전해오고 있다. 시호는 정민(貞敏).

 

 묘는 행신동 무원 마을 진주 류씨 묘역 공원내에 남향으로 위치하고 있다.  대리석의 묘표에는 ‘資憲大夫 工曹判書 兼同知春秋館事 五衛都摠府摠管 柳辰仝墓’라 기록되어 있다. 비문 측면 내용에 의하면 이 비는 명종 17년(1562)에 세운 것이다. 묘아래 50m 지점에는 비각을 세워 보존하고 있는 명종 18년(1563)에 건립된 신도비가 있는데 옥개석이 건조되어 있다.

 

 

묘의 봉분 주위에는 상석, 장명등과 문인석, 망주석 각 1쌍이 배치되어 있고 상석 뒤편에는 대리석 재질의 묘표가 세워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