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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재] 류림선생묘 및 신도비

작성자 : 고양문화원 날짜 : 23/06/25 22:57 조회 : 4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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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시 향토문화재 제29호

지정일 :1991. 6. 25

 

소재지 :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행신동 산106-8(임)

 

류림은 조선조 중기의 무신 인조 21년(1643)에 돌아갔다. 자는 여온(汝溫)이며 본관은 진주로 공조판서 진동(辰仝)의 손자이다. 선조 36년(1603) 무과에 급제하여 충청도 병마절도사, 전라우도 수군절도사 등을 지냈다. 인조 14년(1636) 병자호란 때는 평안도 병마절도사로 성을 굳게 수비하여 침입한 청군의 공격을 무사히 넘겼다. 강화에서 남하하는 적을 크게 무찔러 전공을 세웠다. 청국과의 화의가 성립된 후 다시 평안도 병마절도사에 부임하였으며 청나라의 요청으로 명나라 군대를 격퇴하였다. 그 전공으로 심양으로부터 초청장이 왔으나 이를 거절하여 오히려 백마성(白馬城)에 유배, 안치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인조 16년(1638) 풀려나와 이듬해 삼도수군통제사로 승진되었다. 인조 19년(1641) 청국이 명나라를 토벌할 때 또다시 그들의 요처에 따라 영병장(領兵將)으로 출정했으나 몸이 불편하다는 구실로 참전하지 않았다. 돌아간 후에 우의정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충장(忠壯)이다.

 

묘는 행신동 번데뫼 마을에 위치하며 배(配) 증정경부인 안동 김씨(安東金氏)의 묘와 합장되어 있다. 묘소 아래 100m 지점에는  숙종 21년(1695) 8월에 건립된 신도비가 남아 있다. 신도비에는 옥개석이 갖추어져 있고, 비문은 남구만(南九萬)이 짓고 글씨는 아들 지발(之發)이 썼으며 전은 홍수주(洪受疇)가 하였다.

 

묘 앞에는 높이 127㎝, 너비 52㎝, 두께 22㎝의 묘비가 있다. 신도비에는 옥개석이 갖추어져 있는데 높이 240㎝, 너비 91㎝, 두께 34㎝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