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시의 충실한 문화지킴이 고양문화원
왕릉에 제사를 지내다.
오늘은 서삼릉의 대표적인 국왕, 인종과 그의 왕비인 인성왕후 박씨의 효릉 (孝陵) 제향이 있었습니다. 효릉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일부 부분 개방으로 관리되고 있는 왕릉 입니다. 효릉 제향 일에만 공식적으로 일반인에게 공개하고 있습니다. 효릉은 서삼릉에 있는 축협 목장으로 완전히 둘러쌓여 있고 목장에 구제역 등 전염병이 오염되면 제일 먼저 폐쇄되는 지역에 자리해 있습니다. 효릉은 조선조 12대 인종의 능인데 널리 알려져 있지 않은 왕릉 입니다 다른 능과 같이 정자각, 능침 등이 만들어져 있는데 특이한 점은 왕릉에는 봉분에 병풍석이 둘러쳐져 있고 왕비릉에는 병풍석 없이 둘레석만 만들어진 점 입니다. 봉분을 지키고, 모시고 있는 여러 석물들 가운데 문인석과 무인석, 장명등 은 그 규모가 대단히 크며 조각의 예술적 가치가 빼우 뛰어 납니다. 조선 중기의 왕릉 조성 방법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이곳 효릉의 제향일이 8월에 있어 매우 더운 여름에 제사를 올리는데 헌관 및 제집사자들도 힘들어 하는 제향행사 입니다. 제사는 초헌례, 아헌례, 종헌례 등으로 진행되는데 각자 홀기의 순서에 따라 제향을 진행합니다. 고양시에서는 효릉 이외에도 서삼릉, 서오릉, 고려 공양왕릉에서 매년 왕릉제향을 올립니다.
2026/08/18, 고양문화원
고양의 상징 나무 , 백송 이야기
각 시군에는 그 도시를 상징하는 나무 (木)가 있습니다. 우리 고양시도 일산서구에 우리시를 상징하는 송포 백송이 상징목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이 백송 가지가 역 삼각형 모양으로 번성하여 지금도 건강하게 자라고 있습니다. 나무의 생긴 모양이 특이하고 적어도 400년 이상 되었으며 백송 부근에 후손들이 살고 있는 특이점으로 인해 현재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백송에는 여러가지 이야기가 있습니다. 우선 이 백송을 처음심은 사람이 두분으로 덕이동에 후손이 살고 있는 탐진최씨 최수원 장군이 처음 심었다는 내용과 조선조 중기 기계유씨 유하겸 선생이 심었다는 2가지 설 입니다. 최수원 장군은 조선 세종 당시에 김종서 장군의 막하에 있던 장수로 외적을 물리치고 고향으로 돌아올 때 백송을 가지고 와서 심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또 하나는 유하겸 선생이 중국에 사신으로 갔다가 백송을 가져다 심었다고 합니다 백송은 다른 소나무와 비교하여 나무 껍질이 희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고양의 송포 백송도 나무 기둥, 가지, 줄기 등이 흰색을 띄고 있습니다. 백송은 수백년간 변화됨 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점, 고양시민들도 백송과 같이 변함없이 고양을 사랑하자는 뜻으로 고양의 상징나무로 정하게 되었습니다.
고양이란 이름의 시작
인구 108만명의 고양. 고양이란 이름은 참 오래된 도시 이름 입니다. 고양이란 이름이 처음 만들어진 1413년 (조선 태종 13년) 이후 지명이 한번도 바뀐적 없이 고양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고양은 조선초기에 고양현에서 고 (高) 고자를 따고 덕양현 (陽)에서 양자를 따서 고양이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고양지역을 고봉으로 하였는데 당시 덕양지역의 주민들이 건의하여 오늘 날에는 고양으로 전해져 이어오고 있습니다. 당시 주민들의 건의내용은 고려시대로 부터 불려온 덕양도 잊지않게 덕양을 지명에 넣어 달라는 것 이었습니다. 하여 나라에서 덕양지역의 건의를 받아들여 고양이 된 것입니다. 고양의 이름은 현재도 일산의 주산인 고봉산과 덕양의 주산인 덕양산이 그 이름을 계승하여 불리고 있습니다 사실 고봉과 덕양은 삼국시대 부터 고양을 부르던 명칭으로 보이는데 문화유산 발굴 결과 삼국시대의 흔적을 발견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고양에는 순수한 단일 지명으로 정해진 후 줄곧 이어온 소중함이 담겨져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