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시의 충실한 문화지킴이 고양문화원
[전설과설화] 풍동과 산황동의 부자 이야기
옛날 도촌천을 사이에 두고 풍동마을 쪽에는 황씨성을 가진 큰 부자가 살고 있었다. 그리고 산황동쪽에는 노씨 성을 가진 큰 부자가 살고 있었다. 이 두 사람은 워낙 부자여서 대부분의 논과 밭이 서로 논둑을 사이에 두고 맞붙어 있었다. 두 부자는 만나기만하면 늘 서로 자신이 더 부자라고 다투기 일쑤였다. 그러던 어느해 비가 많이 내려 그 홍수물로 인해 도촌천에 놓여진 나무다리가 떠내려갔다. 마을 사람들은 산황동의 노씨 부자와 풍동의 황씨 부자를 찾아가 다리를 놓아줄 것을 간청하였다. 자신들의 재력을 마음껏 뽐낼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 두 부자는 서로 비싸고 좋은 다리를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을 한 후 비싼다리를 만든사람이 부자내기에서 이기는 것으로 하였다. 한 달이 지난 후 도촌천에는 두 개의 다리가 완성되었다. 먼저 황씨 부자는 그 귀하고 비싼 놋쇠를 이용한 놋다리를 만들었다. 온 동네 사람들은 황씨 부자가 만든 놋쇠 다리를 보고 깜짝 놀랐다. 그런데 노씨 부자가 만든 다리는 닭의 똥집으로 만든 닭똥집 다리였다. 마을 사람들은 두 다리를 본 후 누가 더 부자인지를 판정하기 위해 며칠 동안 고심하게 되었다. 그리고 고심 끝에 마을 사람들은 노씨가 더 부자라는 판정을 내렸다. 이유인즉 놋쇠다리는 수십년동안 고치지 않고 사용하여도 되지만 닭똥집다리는 매년 다시 만들어야만 다리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만큼 노씨 부자가 더 많은 돈을 쓰는 것이니 결과적으로 그가 더 부자라는 것이었다.
2023/06/25, 고양문화원
[전설과설화] 백석동 흰돌이야기
옛날 고양시의 각 마을들이 처음으로 이름을 짓기 시작할 때의 이야기다. 다른 마을들은 모두 어엿한 이름을 지어 쓰고 있었는데 유독 일산의 남쪽 끝에 위치한 한 마을은 이름을 짓지 못해 애를 먹고 있었다. 이 마을의 앞으로는 한강으로 흘러가는 시냇물이 있고 또 넓은 들판이 있어 살기는 아주 좋은 곳이었으나 마을의 이름이 없어 늘 다른 마을 사람들로부터 비웃음거리가 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해 여름, 큰 홍수로 한강의 물이 갑자기 불어나더니 한강 상류 쪽에서 하얀 돌 하나가 떠내려와 이 마을의 한쪽 산귀퉁이에 걸려 멈추었다. 이 하얀 돌 위에는 갓난아이 하나가 타고 있었는데, 갓난아이의 눈빛이나 기개가 여느 아이와는 확연히 틀렸다. 마을 사람들은 아이와 흰돌이 하늘에서 내려준 신령한 것이라 믿고 정성껏 아이와 돌을 돌보았고, 마을 이름도 백석(白石)이라 정하였다. 이런 일이 있은 후 백석 마을은 날로 크게 번성하고 좋은 일만이 생겼다. 그리고 이런 하얀 돌과 아이에 얽힌 소문은 이웃 마을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이 소문을 들은 옆 마을의 혹부리 영감은 이를 시기해 백석 마을 사람들 몰래 아이를 자루에 담아 한강에 버리고 바위마저 깨뜨려 버렸다. 그 순간 하늘에서 갑자기 번개와 벼락이 치더니 혹부리 영감을 한 줌의 재로 만들어 버렸다. 그리고 이후로 백석 마을도 점차 쇠락해져 가고 예전의 부귀영화는 사라지고 말았다.
[전설과설화] 북한동의 노적봉과 밥할머니
이 이야기는 임진왜란 당시의 의병 활동을 보여주는 내용 중의 하나이다. 왜국(일본)이 아무런 명분도 없이 전쟁을 일으켜 조선의 산천을 피로 물들인 지 8개월이 지난 조선 선조26년 정월, 조선의 조정은 명나라에 원군을 요청했고, 이 요청에 따라 명나라는 이여송을 대장군으로 삼아 명군 4만 명을 파견했다. 총병관 이여송은 양국의 연합군을 총지휘하여 왜군에게 함락되었던 평양성을 탈환하고 그 여세를 몰아 한양에서 서울을 향해 남진하였다. 그러나 그해 정월 26일 한양을 눈앞에 둔 고양시 벽제관의 남쪽 숫돌 고개 전투에서 조선 명나라 연합군은 왜군에게 참패하여 북한산으로 뿔뿔이 패주, 이여송과 장수들의 일부는 북한산 노적봉 밑에 집결하게 되었다.왜군이 포위망을 좁혀오자 이여송은 "길은 이제 두 갈래뿐, 이대로 앉아서 죽느냐, 아니면 적에게 투항하여 목숨이라도 살려달라고 애걸하느냐, 어느 길을 택하는 것이 낫겠는가?" 하고 말하면서 답답한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자 조선관군의 총사령관 격인 도원수 김명원은 "길은 또 있습니다. 하나는 적에게 총반격을 가해 이번 패전의 수치를 씻는 길이며, 다른 하나는 혈로를 뚫고 적진을 돌파하여 흩어진 병력을 재정비하는 길이외다." 라고 말했다. "김원수의 말씀이 좋기는 하나 아다시피 아군은 이번의 패전으로 다수의 병력을 상실해꼬, 적군은 의기양양하여 날뛰면서 시시각각으로 포위망을 좁히고 있으니 혈로를 뚫기는 고사하고 쥐 한 마리 빠져나갈 구멍조차 찾기 어려운 형편이 아닙니까?" 라고 이여송은 침통하게 대답했다.이에 김명원도 더 할 말이 없어 장막 밖으로 나왔는데 한 노파가 "장군께 여쭐 말씀이 있습니다." 하고 다가왔다. 이 노파는 숫돌 고개 남쪽의 진거리에서 떡장사를 하는 할머니였다. 그리고 그 노파가 귓속말로 속삭여주는 소리를 듣고 난 김명원의 안색은 금새 밝아졌다. 그는 즉시 장막으로 들어가서 이여송에게 노파의 말을 전했다. "하늘이 우리를 도우려고 보낸 여신인지도 모른다." 이여송은 김명원의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며 휘하의 장졸들에게 명령했다. "이 근처의 마을에 내려가서 짚단이란 짚단은 있는 대로 다 모아 오도록 하라." 얼마 후 노적봉 기슭을 휘돌아 진거리 앞으로 흘러가는 냇가에는 수많은 왜병들이 모여들어 술렁대고 있었다. "목이 타서 죽겠는데 마실 물이 있어야지." "글쎄 말이야. 저 냇물이라도 마셨으면 좋겠지만 물이 저렇게 뿌여니…." 왜병들이 원망스럽게 바라보는 냇물은 어떤 까닭인지 흐려 있었다. 그때, 한 노파가 함지박에 흰쌀을 수북히 담아 이고 산에서 내려왔다. 조금 전에 아군 진영으로 김명원을 찾아갔던 그 노파였다. 한 왜병이 노파를 불러 세워 물었다. "여보 할멈! 이 냇물이 왜 이렇게 흐리오?" 노파는 그 왜병이 바보스럽다는 듯이 톡 소아 붙였다. "아무리 남의 나라에 쳐들어왔기로 그까짓 것도 모르고 무슨 싸움을 한다는 거여? 저 산에 수만명의 군사들이 집결해 있는 데다 군량미가 남아서 처치하기 어려운 형편이라고 하오. 그 흔한 쌀씻어 군사들의 밥을 지으니 당연히 냇물로 흘러들게 아니오?" "저 산에 그렇게 군량미가 많소?" 왜병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르다뿐이오. 정 내 말이 믿어지지 않거든 저기를 똑똑히 보시오." 노파는 손을 들어 노적봉을 가리켰다. "저기 저 산봉우리처럼 쌓여진 짚단이 뭔지 아시오? 그게 바로 노적가리라는 거요 ." "노적가리가 뭐요?" 왜병들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아따, 무식한 왜나라 사람들이라 할 수 없다니까. 우리나라에선 밖에 쌓아둔 곡식더미를 노적가리라 부른단 말이오." 노파는 왜병들을 핀잔하고 나서 "자, 이걸 보시오." 하고는 머리에 이고 있던 함지박을 왜병들 앞에 내밀어 보였다. "마침 산에 나무를 하러 올라갔는데 군사들이 마음대로 갖다 먹으라고 이렇게 옥같이 흰 쌀을 퍼주는구려." 왜병들을 기가 막혔다. 노파는 그들을 싸늘한 눈초리로 쳐다보고는 총총히 사라졌다.그리고 그 이튿날 왜병들은 멀리 도망가 보이질 않게 되었다. "그 노파의 계략이 들어맞았군. 아군의 병력과 군량이 엄청나다고 생각하여 도망친 것임에 틀림없어." 도원수 김명원은 미소를 지었다.왜병들의 눈에 노적가리처럼 보인 것들은 노적봉에 둘러쳐진 짚단들이었다. 그리고 냇물이 흐려진 것은 회를 탄 물을 흘려 보냈기 때문이었다. 이 모두가 노파가 제안한 계략이었던 것이다. 이리하여 아군은 즉시 혈로를 뚫고 전열을 재정비할 수 있었다.지금도 통일로 길가에는 머리 없는 보살의 석상이 있으며 사람들은 이것을 밥할머니라고 부르는데, 그 석상이 아군을 전멸의 위기에서 구출한 슬기로운 노파의 화신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외에 이 밥할머니는 고속 할머니, 밥보시 할머니 등의 명칭으로 불리우며 서로 다른 내용의 이야기들로도 전해 내려오고 있다.
[전설과설화] 고봉산과 한씨 미녀
고구려,백제, 신라 삼국이 서로 대치하던 삼국시대, 일산은 백제의 영토에 속해 있었다. 그런데 일산의 중심에 있는 고봉산일대는 매우중요한 요새 겸 요충지로 고구려가 늘 이곳을 점령하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당시 이곳에는 한주라는 아름다운 미녀가 살고 있었는데, 그녀는 어느날, 백제를 정탐하기 위해 잠입한 고구려의 태자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청춘남녀는 처음 만난 이후 급속도로 가까워져 헤어질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시간이 흘러 백제 땅에서 모든 임무를 마친 고구려 태자는 후일 만날 것을 기약하고는 고구려 로 돌아갔다. 고구려로 돌아온 태자는 곧 왕위에 오르니 이가 바로 고구려의 안장왕이다. 한편, 백제 땅에 남겨진 한주는 그 아름다움이 널리 소문나 백제의 태수로부터 청혼을 받게된다. 그러나 한주는 이미 장래를 약속한 사람이 있어승낙 할 수 없다고 거절한다. 장래를 약속한 사람이 누구냐는 태수의 물음에 한주가 대답을 못하자 "네가 장래를 약속한 사람을 밝히지 않는 것을 보니 적의 첩자와 내통한 것이 틀림없다."며 한주를 옥에 가두었다. 이 소식을 들은 고구려의 안장왕은 을밀로 하여금 용감한 병사 20명과 함께 한주를 구하라고 명한다. 을밀 일행은 신분을 숨기고 백제에 잠입한다, 그리고 백제태수가 생일을 맞아 큰 잔치를 벌이고 있을 때 이를 기습 백제 태수를 죽이고 한주를 구출한다. 대군과 함께 국경에 주둔하고 있다가 이 소식을 들은 안장왕은 크게 기뻐하며 한시바삐 한주를 만나고자 하였다. 구출된 한주도 빨리 안장왕을 만나고 싶은 마음에 높은 산에 올라 봉화를 밝혔다. 마침내 안장왕과 한주는 감격적인 재회를 하게 되고 결혼을 한다.